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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호빵맨 조회 21회 작성일 2021-08-15 12:13: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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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미국대학졸업생 조선청년 변수의 꿈 [역사실험] KBS 2013.03.13 방송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은 조선의 역적이었다

지난 해 12월, 취재진에 의해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의 졸업장이 발견되었다. 7개월간의 추적 끝에 발굴된 졸업장의 주인공은 조선 청년 변수. ‘최초’라는 말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닌 구한말 최고의 엘리트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망명죄인, 조선의 역적이었다. 31세,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그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졌다.

천재라 불리던 조선의 젊은 엘리트는 어쩌다가 조선의 역적이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쫓기는 몸으로 미국 명문가의 자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 대학에서 공부, 한국인 최초로 이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을까?
구한말 격변기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조선을 위해 원대한 꿈을 꾸었고, 그 포부와 그에 대한 헌신은 그의 삶을 누구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걸고 조선 근대화를 이루려 했던 격동기 조선 최고의 지식인, 10여 년이 넘게 그의 흔적을 찾아 온 그의 후손과 함께 일본, 중국,미국 워싱턴, 볼티모어, 버지니아 등 7개월 넘은 추적 끝에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완전히 잊혀져버린 한 혁명가의 삶이 되살아난다.

▶1891년 미국을 뒤흔든 조선인의 죽음, 그리고 벨츠빌 묘지 비석에 새겨진 한글 이름 ‘벤수’

1891년 10월 22일 워싱턴 근교의 기차역에서 한 조선인이 기차에 치여 사망했다. 31세 젊은 나이의 청년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농무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미국 전 지역의 주요 신문들이 그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변수가 누구이기에 그의 죽음은 미전역을 요란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정작 미국에 파견나와 있던 조선공사관에서는 그를 모른척했다. 당대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으로 알려진 암멘 장군은 그를 자신이 묻히려고 준비해 두었던 벨츠빌의 묘지에 변수를 직접 안장했다. 암멘 장군과 변수의 친구들은 변수의 비석에 그의 이름을 한글로 새겨주었다.
조선공사관은 왜 그를 외면했을까? 그리고 조국에서조차 버림받은 그에게 암멘 장군은 어째서 그토록 친절을 베풀었던 것일까? 한국인 최초로 미국대학을 졸업한 그의 삶은 알면 알수록 흥미롭고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당시 양잠학과 근대화의 얽힌 비밀 최초공개. 최고의 엘리트 청년, 조선 최초로 양잠학과 화학을 공부, 개화의 최전선에 나서다.

중국어 역관 집안 출신으로 뛰어난 어학실력을 가지고 있던 그는 어린 나이에 개화당의 지도자 김옥균에게 발탁, 그의 일본사행 수행원이 된다. 그리고 그의 남다른 포부와 그를 눈여겨본 김옥균은 특명을 내린다.
일본의 한 실업학교에서 양잠과 화학을 공부하라.
왜 그는 일본에가서 양잠학과 화학을 공부해야했는가? 근대문화혁명과 밀접한 관계인 양잠학의 비밀을 공개한다. 그리고 뒤이어 조선 최초의 견미사절단 보빙사의 일원으로 발탁, 조선인 최초로 미국 땅을 밟고, 뒤이어 세계 일주를 한 후 귀국했다.
넓은 식견과 근대화에 대한 안목을 인정받은 그는 의욕적으로 조선의 개화를 추진하던 고종의 신임을 얻었고, 중인으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왕의 측근에서 일하는 관리가 되어 참위 급인 차관보까지 승진한다. 이제 그는 그의 숙원이던 조선의 근대화를 직접 실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1884년 12월 4일,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꿈꾸던 조선 최고의 젊은 엘리트들은 혁명을 기도했다. 그 중에는 변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혁명은 3일 천하로 끝이 났고, 실패한 혁명은 그에게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다. 그의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자신은 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 목숨의 위협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중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혁명에 주역으로 참여했던 변수. 거사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무엇일까?
그의 행적을 좇아 일본으로 향한 취재진. 게이오대학 고문서보관서에서 발굴한 자료를 바탕으로 갑신정변의 주동자 김옥균과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와의 관계, 그리고 갑신정변에서 변수의 활약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미국 최초의 동양인 미연방 농무부 직원. 미국에서 시작된 그의 새로운 도전.

188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메릴랜드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시작된 또 다른 삶. 당시는 미국에서도 대학공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왜 출세가 보장된 다른 전공을 두고 하필 농학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을 위하여 선택한 농학!!
그는 남다른 각오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한 결과, 그는 명문가의 자제들을 제치고 당시 소수만이 취득할 수 있는 이학사 학위와 졸업식때 대표연설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에 더해 미연방정부의 직원이 되는 빛나는 성과를 거둔다.
망명죄인의 신분으로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돌봐줄 이 하나 없었던 그가 이뤄낸 값진 결실. 그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120년만의 귀환, 백 년의 세월 동안 묻혀있던 역사적인 최초 졸업장 발굴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다. 졸업한 지 3개월 남짓, 그는 뜻밖의 기차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산은 한국인이 최초로 취득한 대학 졸업학위. 그리고 미국 농무부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논문 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의 졸업장은 한국의 후손들에게도,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취재진은 7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기적적으로 그의 졸업장을 찾아낸다.
KBS 취재 도중 찾아낸 120년전 졸업장을 얼마 뒤 메릴랜드 대학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서는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모교인 메릴랜드 대학에 변수 졸업장 기증식이 열렸다.
메릴랜드 대학에는 그를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붙인 기념관 방이 있다.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메릴랜드 대학교.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걸출한 인재들을 제치고 대학이 특별히 그를 지금도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뿐만 아니라 대학의 정문입구에 학교의 역사와 함께 그의 사진과 소개문을 나란히 새겨
넣었다. 과연 120년전 졸업하고 죽은 변수를 이토록 이 대학에서 기억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그의 졸업장 기증식에서 대학 부총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은 그가 약 150년의 학교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닌 중추적인 인물, 빛나는 스타라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죽어서까지 120년동안 미국 한복판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다. 120년 전 한 조선청년이 그토록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 큰 울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조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죽음과 삶은 지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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